한국이 통근시간과 업무강도, 일-생활 균형, 자녀돌봄, 건강과 웰빙 등의 영역에서 유럽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반면 직무 자율성과 근로자 참여 등은 수준이 낮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15일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박종식·오진욱 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 14일 열린 한국노동연구원 개원 35주년 기념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의 ‘국제비교를 통한 우리나라의 근로환경 현황’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 2020~2021년 한국의 6차 근로환경조사(안전보건공단) 결과와 지난 2021년 유럽연합(EU, 27개국)의 유러피안 워킹 컨디션 서베이 결과를 비교·분석했다. 또 EU 회원국이 아닌 영국·노르웨이의 조사 결과도 비교 대상에 포함했다.
유럽 국가와의 임금·근로시간·업무강도·돌봄·근로자 참여 등 노동 환경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를 통해 한국 노동자의 근무환경 수준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임금과 근로시간 외의 다양한 노동환경 개선 과제를 도출한다는 목표다. 근로시간·통근시간, 건강과 웰빙 등은 절대 수치(%)이고 물리적 위험·정서적 위험·업무강도·근로자 참여·직무 열의·일-생활 균형·가족돌봄 등은 100점 표준화로 환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3년~2022년 20년간 한국 임금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146만5000원에서 288만원으로 약 2배 증가했다. 근로시간(주당)은 48.5시간에서 38.6시간으로 약 20%(10시간) 감소했다. 지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출퇴근 시간은 줄고 물리적 위험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일 출퇴근 시간은 76.3분에서 45.4분으로 줄었고 피로한 자세는 30.1점에서 22.7점으로 낮아졌다.
업무강도 영역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일한다는 경우는 27.1점에서 26.4점으로 낮아진 반면 엄격한 마감 시간에 맞춰 일한다는 23.4점에서 26.0점으로 상승했다. 이어 사회적 환경 영역에서 상사의 지지는 59.3점에서 64.3점으로 오른 반면 적절한 보상은 63.3점에서 57.9점으로 내렸다. 일자리 전망은 54.7점에서 53.5점으로 내린 반면 일-생활 적합도 점수는 57.4점에서 62.2점으로 높아졌다. 노동조합 유무의 경우 9.5%에서 20.3%로 상승했다.
보고서는 한국은 지난 10년간 임금 및 근로시간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 일-생활 적합도, 교육기회 증대, 노동조합 설립 등 여러 영역의 근로환경이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에 대한 보상과 일자리 전망, 직무자율성 등에 대한 불만·불안감이 증폭되는 양상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의 경우 출퇴근 시간은 EU는 한국과 같은 45.4분이고 노르웨이는 48.2분, 영국은 53.2분으로 다소 많았다. 주당 근로시간은 노르웨이는 37.1시간, EU는 39.6시간, 영국이 39.7시간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40.9시간이다.
업무강도 영역에서 빠른 속도로 일하거나 마감 시간에 맞춰 일하는 수준을 보는 마감 시간은 영국이 68.08점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노르웨이 59.70점, EU 58.72점 순이었다. 한국은 26.01점으로 영국과 두 배 이상 차이가 나 영국이 더 시간에 쫓기면서 일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빠른 속도 점수는 노르웨이가 62.35점으로 가장 높았고 EU가 59.50점으로 한국(26.39점)보다 높았다. 이에 빠른 속도로 일하거나 마감 시간에 맞춰 일하는 업무강도 수준은 한국이 유럽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과 웰빙 영역을 보면 아플 때 일한 경험이 한국(16.7%)이 가장 낮았다. 영국은 37.0%로 가장 높았고 이어 EU(30.2%), 노르웨이(28.0%) 순이었다. 이어 근로자 대표기구 영역의 경우 노동조합 유무는 EU(57.9%)가 가장 높았고 노르웨이(52.4%), 영국(50.4%) 순이었지만 모두 50%를 넘었다. 반면 한국은 20.3%에 그쳤다. 안전보건위원회 설치는 영국(82.4%)이 최고였고 EU(72.9%), 노르웨이(64.3%)도 비교적 높았다. 한국은 21.0%로 크게 낮았다. 직원 정기회의(노르웨이 76.0%, 영국 71.4%, EU 69.3%) 수준도 한국(26.4%)이 유럽 국가보다 크게 떨어졌다. 한국은 노동조합과 안전보건위원회, 정기적 회의 등 근로자 대표기구 활성화 수치가 비교 대상 국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업무시 집중·업무시 열정·에너지 충만을 측정하는 직무 열의 영역에서도 한국은 낮은 수준이었다. 업무시 집중은 노르웨이(80.42점)가 최고였고 이어 EU(78.19점), 영국(74.98점), 한국(66.11점) 순이었다. 업무시 열정 점수도 노르웨이(76.57점), EU(74.50점), 영국(74.32점), 한국(64.19점) 순으로 높았다.
반면 일-생활 균형은 한국이 유럽 국가와 비교해서도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안일 때문에 일에 집중 못하는 경우는 한국(15.55점)이 가장 낮았고 영국(29.19점)이 가장 높았다. EU는 27.09점, 노르웨이는 24.88점이었다. 퇴근 후 집안일 못한다는 점수는 한국(26.82점), 노르웨이(40.89점), EU(42.43점), 영국(49.13점)순이었다. 하지만 일-생활 적합도는 노르웨이(74.8점)가 가장 높았고 이어 영국(72.9점), EU(70.8점), 한국(62.2점) 순으로 높았다.
가족 돌봄 영역에서는 한국의 노인 돌봄 수준이 크게 낮았다. 노인 돌봄 점수는 EU가 23.79점이고 영국 19.43점, 노르웨이 17.39점, 한국 8.31점이다. 아이 돌봄 점수는 EU(52.31점), 한국(42.85점), 노르웨이(42.33점), 영국(35.51점) 순이다.
한국과 유럽국가(한국·EU·영국·노르웨이)의 근로환경을 비교한 결과 통근시간·업무강도·건강과 웰빙·일-생활균형 등의 영역에서 한국은 1위를 기록했다. 영국은 통근시간·업무강도·일-생활균형 등에서 4위에 그쳤다. 하지만 한국은 근로시간·직무자율성·근로자 대표 기구·직무 열의·노인 돌봄 등의 영역에서는 최하위(4위)에 머물렀다.
보고서는 한국은 직무자율성이 매우 낮다며 산업수준의 고도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근무환경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유럽국가와 비교해 근로자 참여와 직무 열의 정도가 낮다며 노동자 참여에 대한 연구, 노동조합 등의 역할에 대한 연구 등을 통해 근로환경 개선에 대한 인식 전환과 노사가 윈-윈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진욱 부연구위원은 “교육 훈련을 통해 직무자율성을 많이 올릴 필요가 있다”며 “근로자 참여 환경을 최대한 개선해 의사결정 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면 직무 열의도 높아지고 노사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상황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보고서는 국가 간 세부적인 차이와 2020~2021년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 자기 보고식 결과로 다양한 응답 오류 가능성 등이 있는 점은 분석의 한계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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